(입사 초반 마우스 노가다로 그린 자동차)
진짜 웃긴 걸 말해줄까? 위의 그림은 내가 지금의 직장에 들어간 지 얼마 안됐을 때 상사가 시켜서 그린 그림이다. 그런데 이 그림을 뭘로 그린 거 같애? 마우스로 그렸다. 이거 걍 마우스 노가다 해서 그린 그림인 거다. 내가 왜 이 끔찍한 과거를 회상하며 이 그림을 올렸는가 하면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느낀 사람들의 불가사의한 생각들이 나에게 끼치는 피해 때문이다.
나는 4년제 대학의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그런데 대학을 다니던 도중 원피스를 보게 되고 만화가 그동안 내가 찾아 헤매던 바로 그 매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취직을 안하고 출판 만화를 그리는 화실에 문하생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알고 있거나 듣게 된 모든 사람들 (가족, 친구, 회사 사람, 그냥 아는 사람, 처음 보는 사람 등) 은 내 이런 경력에 대해 이상한 반응을 보인다. 물론 나도 이런 식의 과정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가 말하는 이상한 반응이란 그 모든 사람들이 나를 응원한다는 것이다.
그게 왜 이상한가 하면 이렇다. 다들 이런 나의 행동에 대해, '너 답다.' '너는 잘 할 수 있다.' '멋있다.' 등의 반응을 보인다. 문제는 그 이후다. 그러고 나서 나를 끊임 없이 괴롭히기 시작한다. 괴롭히는 방법이야 수백 수천 가지이지만 우선 오늘 새삼스레 더 심각하게 느껴 이 글을 쓰게 까지 만든 괴롭힘부터 말하자면, '그럼 너 그림 잘 그리겠네. 여기 그려줘.' '너 그림 알바 할래?' '너 이거 그릴 수 있지?' 등등.
그럼 나는 대답한다. '나 그림 그리는 거 싫어해.' 그러면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게 말이 돼?' 그래서 나는 또 할 수 없이 설명을 해준다. 내가 만화를 하게 된 이유는 내가 말하고 싶은 것들을 만화로 표현하기 위해서지, 그림이 좋아서 만화를 하게 된 게 아니라고. 내가 말을 정돈해서 할 줄 모르고, 설명이 미흡하기 때문일까? 내가 이 말을 하면 사람들은 나를 이율배반적이다. 이중적이다. 너의 생각을 너 스스로 잘못 알고 있다. 등등 으로 나를 비판한다.
그러면 나는 더이상 설명하기가 싫어진다. 그 사람들을 이해시킬 수 없다는 사실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깨달은 일이다. 내가 다른 사람과의 대화에는 전혀 참여하지 않으면서, 구플에 혼잣말을 지껄이며 즐거워 하는 것 또한 그 때문이다. 그 어떤 사람도 나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고, 나는 그것들에 대해 일일이 설명하는 것이 귀찮다.
나는 말로 설명하는 것에 서툴고, 누군가 꼬치꼬치 캐묻는 것에 내 생각을 논리정연하게 정리해서 대답할 줄도 모른다. 게다가 굳이 내 생각을 그 사람에게 이해시켜야 할 필요성도 별로 느끼지 못한다. 그 사람이 나를 이율배반적이니 뭐니 해도 나는 그저 그 사람이 나에게 말을 거는 게 귀찮을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냥 나한테 말 안 걸면 안되나? 하는 생각이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나에게 그림 일을 시킨다는 거다. 앞서 말한 마우스 노가다 역시 그 중 하나이다. 입사 전 면접에서 3년간 만화를 했다는 경력을 보고 그럼 간단한 그림 정도는 그릴 수 있겠네. 하는 것에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마우스로 자동차를 그리게 시킨 것이다.
(마우스로 그린 자동차가 한 대만 있을까? 여기 올린 거 말고도 많다.)
아무리 그림에 문외한이라도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자동차만 그렸을까? 캐릭터 일러스트 등 별의별 걸 다 시켰다. 물론 따로 돈을 준 것도 아니었다. 그러면서 너가 좋아하는 일 하니까 좋지? 이런다. 그 말에 나는 그저 분노가 차오를 뿐이다. 나는 분명히 말했다. 그림 그리는 거 싫어한다고. 나는 만화를 좋아하지만 이 마우스 노가다는 만화가 아니다.
정말 웃기지 않은가? 만화랑 그림은 다른 것이라고 말하는 내 말은 틀리고, 만화를 그려봤으면 마우스로도 뚝딱뚝딱 순식간에 그림을 찍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맞다는 거야? 도대체 누가 이상하다고 하는 건지 모르겠다. 직장에서만 이런 일이 있을까? 더 심각한 것은 가까운 사람이다.
한 친구는 말 버릇처럼 나한테 불쌍하다고 말한다. 나는 3년간 만화를 하면서 거의 대부분을 한달에 30만원 전후의 수입으로 먹고 살았다. 이것이 크게 문제가 되어 나를 힘들게 한 적은 없었다. 그렇지만 수입이 적으니 일이 터지면 돈이 모자를 때가 있기는 했다.
딱 한 번 무슨 일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십만원이 부족한 적이 있었다. 부모님께 손 벌리기 싫어서 그 때 바로 이 친구에게 십만원을 빌렸다. 참고로 나는 지금 당장 갚을 수 있는 게 아닌 이상 절대 친구에게 돈을 빌리지 않는다. 10년을 함께한 친구지만 그동안 그게 유일한 거였다.
그런데 오히려 그랬기 때문일까? 그 친구는 그때부터 나를 불쌍하게 여긴다. 그리고 최근 나에게 그림 알바를 주면서 생색을 내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것이 아니라 그 친구가 주변에 그림 그릴 사람이 없다고 도와달라고 해서 친구니까 걍 해주기로 한 거였다. 게다가 그 얘기를 할 때에는 완성해야 한다는 날짜가 앞으로도 한참이나 남아 있어 충분히 시간적 여유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수락한 것이었다. 물론 까놓고 보니 아니었다. 그래서 지금도 개고생을 하고 있다.
솔직히 내가 직장 다니면서 유일한 휴식 시간인 주말을 일 하면서 낭비하고 싶을 것 같나? 나는 내 휴식을 몇십만원에 바꾸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나에게 휴식은 돈보다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그런데 과연 내가 이 일을 하고 싶어서 했을까? 그런데 왜 그 친구는 나에게 그림 일을 주는 것이 내가 하고 싶은 꿈의 일을 자신이 이루게 해준 것처럼 구는 걸까?
그림은 내 꿈이 아니다. 내가 싫어하는 귀찮은 작업이라고. 나는 그 친구에게도 만화와 그림이 다르다는 것을 수없이 얘기 했지만 그 친구는 여전히 나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두 사례의 공통점? 둘 다 나를 응원하고 있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나를 응원한다고 하고 있고, 그 사람들이 나를 생각해주는 마음에 대해서 나는 당연히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 어째서 그 응원은 나에게 전혀 쓰잘데기 없이 괴롭힘으로 느껴지고, 오히려 그 이면에 있는 그 사람들의 자기만족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일까?
나를 응원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도와주고 있다는 데서 오는 혼자만의 뿌듯함이 그 사람들에게서 느껴진다. 그리고 나는 그 사람들이 느끼고 싶어하는 자기만족의 희생양이 되고 있는 기분이다.
나는 그 누구에게도 도와달라고 한 적이 없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 나에게 다가와 그림 일을 주어 너의 꿈을 이루게 해주겠다고 한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내 꿈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내 생각을 이해할 줄도 모른다. 나는 내 꿈에 대해 확실한 목표와 계획이 있고,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인생을 살면서 그것에 대해 방황하거나 고민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제발 내 꿈에 대해 그만 아는 척했으면 좋겠다. 그 배려가 내 눈엔 멍청해 보이니까.
- 다음 이야기 -
'너 작품은 언제 나와?' '요즘도 만화해?'
만화는 내 인생에 존재하는 유일한 꿈이 아니다. 작은 일부일 뿐이다.
'내가 하지 말라는 말은 안하잖아.' '회사 그만 두면 안되지.' '그림은 돈이 안돼'
마음에 없는 말을 할 거면 걍 대놓고 반대를 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