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4월 2013

[고민] 꿈을 위한 물리학



나는 질량보존의 법칙이 근사적이긴해도 우리가 눈치챌 수 있는 세상 모든 것에 적용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로, 상과 벌. 주변의 평판과 스스로 가지는 만족도. 삶과 죽음도 모두 질량보존의 법칙과 같은 이치가 적용되어 어떠한 형태로든 얻은 만큼 잃고, 잃은 만큼 얻는다. 아, 물론 인과응보, 권선징악처럼 유치하고 촌스럽지만.

아무튼 돈 대신 노동이 따르고, 권력만큼 책임이 따르고, 안락함 대신 귀찮음이 따르고, 아는 만큼 편협하다. 아무리 많은 것을 얻어도 그만큼 잃은 것이 많아 영원히 만족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그렇다고 해도 이것은 매우 적당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이 소멸되지 않고 존재를 유지할 수 있는 것.

그런데 이러한 질량보존의 법칙은 일종의 제약이다. 질량보존의 법칙에 의하면 제약만큼의 자유가 있어야 한다. 그 자유는 상상이라는 형태를 띄고 있는 것일까? 현실의 제약을 상상으로 보상 받는다니.. 이건 좀 억울한 일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종종 상상은 무언가를 창작하거나 발명하게 만들고, 그 결과물은 또 다시 현실에 영향을 미친다. 게다가 상상은 현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러니까 항상 상상이 현실과 분리되어 있는 것 같지만은 않다. 


정말 문제는 세상의 원리가 정말 질량 보존의 법칙과 같은 맥락이라면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그것이 나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사실 나는 이 법칙을 깨트리고 싶어서 안달이 나기도 했었다. 내가 원하는 세상의 법칙은 질량이 그대로 보존 되어서는 안된다. 반드시 질량이 증가해야만 내가 생각하는 이상향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

내 이상향을 잠깐 설명하자면 일단 내 눈에 보이는 세상의 모습이 어떤지 부터 얘기해야 한다. 한정된 세상에 각자 자기만의 공간을 가진 개인들이 빼곡하게 들어차서 매우 답답한 상태이기 때문에 서로 남의 공간을 빼앗아 자신의 공간을 넓힐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 거다. 게다가 내 생각엔 그 중에서도 아주 지배적인 공간을 가진 사람들이 있고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공간에 완전히 침식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실 나는 그 사람들의 공간에 매우 관심이 없기 때문에 그냥 내 스스로 내가 가진 힘만큼 세상 그 자체를 조금 더 늘려서 거기다 내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그런 개척이 세상을 키워나간다는 거고 발전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겠나 싶고. 모든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자신의 공간을 만들어간다면 세상은 정말 어마어마하게 커지게 될 지도 모른다. 그렇게 언제든 무한히 늘려갈 수 있는 것이라면 사람들은 갑갑해하지 않을 거고 그럼 굳이 남의 공간을 침해할 일도 없을 거다.

그런데 만약 질량보존의 법칙이 여기에 적용된다면 내 꿈은 완전 말살이다. 세상의 질량이 증가할 수 없고 영원히 한정적이라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히 아인슈타인은 천재였고, 그 할아버지가 나에게 희망을 주었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에 의하면 질량은 증가하는 것이 가능하다. 에너지의 일부가 질량으로 변환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여기에서 꿈을 이룰 수 있는 희망과 동시에 무엇으로 어떻게 나의 꿈을 이룰 것인가에 대한 적절한 방안까지 찾게 되었다.

아인슈타인은 한정적인줄 알았던 세상 그 자체를 늘려 자신의 공간을 개척해낸 사람이었고 그것이 세상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꿈을 이루기 위한 롤모델 같은 위인이다. 내 꿈에 대한 이런 설명이 조금 허황되고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보이긴 하는데,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나의 이런 꿈은 내가 현실에서 받는 따가운 눈총과 구박때문이었다.


사실 나는 되게 솔직하다. 스트레이트, 직선. 이런 게 나에게 매우 잘 어울리는 단어다. 생각하는 동시에 생각한 것 그대로 말을 하고, 무언가를 볼 때 주변의 잡다한(나에게만 잡다한 거라고 한다) 것들을 무시한 채 본질적인 것을 찾는다. 이런 것 때문에 나는 굉장히 많은 비난을 들어와야 했다. 왜냐하면 나는 조금 멍청한 구석이 있어서 다른 사람들도 당연히 본질적인 것을 먼저 보고 이해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서스름 없이 앞뒤 잘라 먹고 생각나는 대로 말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말들이 매우 비상식적이며 엄청나게 충격적이고 도덕적이지 못하고 이중적이고 위선적이고 다른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심지어 무섭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근데 나는 내가 더 충격이다. 헐이다. 진짜. 나는 굉장히 당연한 것들을 말했다고 생각하는데 내 말의 뜻이 남들에게 내 생각만큼 온전히 전달이 되지 않았던 거다. 그런데 그런 것들도 있지만 진짜로 다른 사람과 내가 정말 너무나도 다른 관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도 많았다. 그리고 항상 비난 받는 쪽은 나였다.

그런데 내가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아직 생각의 정립이 되지 않은 상황에 있었을 수는 있어도 절대 나쁜 생각 같은 것들은 하지 않았다. 굳이 한 단어를 찾아 말하자면 나는 그저 오픈 마인드일 뿐이다. 모든 것에는 이유와 사정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무언가를 대다수의 사람들이 지닌 공용 잣대로 선을 그어 생각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난 잘못되지 않았는데 남들이 자꾸 놀라고 이상하게 생각하면 굉장히 곤란해지기 시작한다. 나는 말을 아끼기 시작했다. 원래부터 말을 잘 못하기 때문에 나는 어차피 내 생각을 온전히 남들에게 전할 수가 없다. 그러면 그 남들은 내가 말한 한두마디를 가지고 겉핥기식으로 판단해버리고 나를 가르치려고 든다. 이거 참 짜증나는 일이다. 이럴 바에야 말을 안하는 게 낫다.

그런데 사람이 어떻게 말을 안하고 살 수가 있나. 누구에게나 소통은 필요하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결국 나는 말을 대신할 나만의 소통 방식을 찾아야만 했다. 그리고 그것은 어떠한 이야기. 픽션에 의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행히 나에게 아주 고마운 재능이 있어 나는 쉽게 이 방식을 채택할 수 있었다. 그 이후 아무리 다른 사람이 나를 이해 못해줘도 괜찮았다. 일단 내가 한 그것들을 보여주었을 때 이전 같았으면 엄청난 비난을 몰고 왔을 내용이라고 해도 그것들이 몰입도 높고 공감 되고 이해가 된다고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는 나의 세계. 현실에 핍박 받고 있는 내 생각들을 펼쳐낼 수 있는 창작물. 그리고 그 이단아 같은 창작물에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공감하는 것. 그걸 이루는 게 꿈이고 이것이 내 나름의 세상을 늘려 내 공간을 개척하는 방식인 거다. 내 공간이지만 세상에 속해있는 것. 나는 여기에 대한 갈망이 이렇게나 크다.

그치만 뭐 이렇게 길게 썼는데 이것도 구체적이지 못하고 현실적이지 못하다고 하겠지. 그 놈의 현실 소리 지겹다응. 난 충분히 현실적이어서 문제 없이 실생활을 잘 유지해 나가고 있고 생활력도 강한데 왜 나한테 자꾸 뭐라 그러지? 내가 보기엔 그 쪽이 더 톱니바퀴 도는 것처럼 보이는데. 툭 하면 힘들다고 그러고. 내 눈에는 그게 더 이상해 보이는데 도대체 왜 내가 이상하다는 걸까? 흑흑..


그릉데.....ㅡ_ㅡ 나는 왜 끊임 없이 이런 걸 생각하고 있는 거지... 원래 나는 누구인가 같은 문제는 청소년기에 하는 거라고 하는데 어른이 되어서도 딱히 정답이 뭔 지는 모르겠어서 그런가. 그저 신념에 의존할 뿐이다. 나는 아직 덜 큰 건가? 다른 사람들은 내 나이에 되게 어른스럽던데 나는 안 그래서, 내가 잘 자라지 않는 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좀 든다. 내가 성숙하지 못해서 이런 생각들을 하는 걸까? 몸집이 쪼끄만 거도 그거 때문은 아니겠지효? ;ㅂ;

아무튼간에 나는 이런.. 뭐랄까? 왜 사냐 같은 문제들이 내 인생의 가장 큰 고민이다. 물론 이런 요따구 고민이 해결되든 안되는 내 갈 길 가는 데에 흔들림이 없을만큼의 확신에 찬 신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신념이 맞는지 아닌지는 영원히 고민해야 한다. 왜냐면 사람은 엄청 멍청하기 때문이다. 내가 틀린 길을 가고 있다고 해도 그게 틀린 길이라는 걸 알고는 있었으면 좋겠다.

음.. 그러고보니 내가 이런 일기를 쓸 때마다 카테고리를 뭐라고 쓰지 하고는 걍 심리라고 적어 넣었는데, 그 카테고리의 가장 적절한 단어를 찾은 거 같다. 지금까지 쓴 것도 다 고민이라고 바꿔야겠다. 우헤헤, 즐거워라.

[고민] 운명이 주는 재미



운명을 믿습니까?! 라고 묻는다면 나는 믿습니다!!! 라고 대답할 거다. 누구는 운명이라는 게 정말로 있다면 이미 정해진 삶을 사는 건 재미 없는 거라고 그런다. 하지만 미래의 운명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 만약 내가 내 운명을 모두 알고 있다고 해도 나는 아직 그 일들을 겪지 못했다. 이게 어떻게 재미 없을 수가 있나. 사람은 모두 죽어야 할 운명을 타고 났지만 그렇다고 인생이 재미 없지만은 않은 것 처럼 말이다.

만약 내가 살아가고 행동하는 일, 주변에서 펼쳐지는 모든 일, 더 나아가 이 시대의 모든 흐름이 어떠한 무언가를 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저 불규칙한 혼란에 불과하다면 그 인생에서 어떠한 의미를 찾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 물론 그 안에는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의미가 있긴하지만 창조 그 자체만으로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그것은 사람에 빗대어 봐도 금새 알 수 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신이 창조된 데 대한 이유와 의미를 찾고 있다. 의미가 없다면 그 피조물은 살아갈 방향성을 잃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운명이 없다면 인생은 정말 재미없을 거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점성술을 좋아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는데, 그것이 마치 거대한 하나의 흐름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단순히 미래를 예측한다기 보다 내 삶이 어떠한 방향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이 의미 없는 일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이다.

내 친구는 가끔 나에게 너의 정돈된 마음이 부럽다고 얘기하는데, 실제로 나는 그 어떤 일이 닥쳐도 크게 동요하는 편이 아니다. 그 이유는 지금까지 얘기한 것처럼 그 모든 일들이 이유가 있어서 일어나는 일들이며, 반드시 겪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들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 경험이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 것. 그러니까 운명을 믿는 것만으로 불행한 경험도 인생을 살아가는 재미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평탄한 인생이란 지루하고, 사람은 지루한 것을 가장 견디지 못한다는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렇기 때문에 운명을 경험 한다는 것에 주저함이 없고, 그것으로 인해 끼치는 영향들이 가치를 가지게 된다.

운명이 주는 재미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친구는 끊임 없이 나에게 어떻게 살아야 할 지에 대한 진로를 묻지만 나는 특별히 미래라는 것을 걱정한 적이 없기 때문에 그저 지금 니가 하고 싶은 걸 하면 되는 거라고 대답한다. 그 친구가 다른 답을 기대하고 있는 거라면 나에게 그 질문을 던지는 것을 그만 둬야 한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그 친구가 원하는 대답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원하는 데로 하고 싶지만 그렇게 해도 되는 건지 자신이 없기 때문에 계속해서 같은 질문을 반복하고 있는 거라고 말이다.

만약 그 친구가 정말로 고민해야 할 일이 있다면 현실에 부딪칠 미래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진짜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는 일일 것이다. 그걸 알고 있다면 절대 갈팡질팡 방황할 일은 없을 거다. 만약 원하는 데로 했다가 잘못되면 어떻게 하냐고? 잘못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 운명을 믿는다면 잘못된 것은 없다. 어차피 어떤 잘못된 것으로 보이는 결과를 초래하든 그것은 그보다 커다란 뜻에 편승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잘못 역시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면 잘못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것으로 운명은 하고자 하는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용기를 준다.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는 것. 인생을 사는 재미다. 물론 뭐든 원하는 일을 다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것을 제약하고 있는 자신이 속한 환경 역시 운명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 제약이 없다면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은 가치를 잃게 될 것이다. 더이상 재미 없는 일이 되고만다.

이것저것 참 길게 써내려 왔지만 사실 운명이 진짜 존재 하는 지 존재 하지 않는 지는 중요하지 않다. 아마 수세기가 지나도 운명이 존재하는 지 존재하지 않는 지는 아무도 증명해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믿는 것만으로 삶에 가치를 느끼고 재미나게 살 수 있다면 해볼만한 일일 거다. 그래서 지구 상의 수 많은 사람들이 종교를 믿으며 신의 뜻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것 아니겠나. 아님 말고 ㅋㄷ

[축구] 드록바의 12-13 UCL 마지막 경기, 첫번째 골






갈라타사라이랑 레알 2차전 지금 막 다 봤다. 완전 궁금해도 완전 진짜 완전 참았는데 결국 허무하게 경기 결과를 알게되어서 조금 좌절했지만. 아. 좌절의 이유는 더이상 드록바의 경기를 볼 수 없다는 사실 (챔스리그 아니면 풀영상 보기 힘든 갈라타사라이ㅜ). 그리고 스포를 미리 알게 되는 거 정말 싫어하니까. 그래도 그 경기 결과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전반전을 참고 볼 수 있었던 거 같다. 전반전에 한 골도 안터졌을 거라는 건 정말 몰랐기 때문에. 하지만 곧 터질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물론 경기 결과 스포는 봤지만 끝까지 누가 골 넣었는지는 절대 보지 않았다. 드록바가 골을 넣었을까? 말았을까? 하는 긴장감이 팀이 승리할까, 말까 하는 긴장감보다 더 강렬하기 때문이다. 사실 갈라타사라이는 첼시가 아닌데다, 드록바가 들어간지 얼마되지 않았고, 그 전까지 전혀 관심 없던 팀이었기 때문에. 하지만 뭐 아주 빠른 속도로 정은 들고 있다. 암튼 나는 이번 경기에서 꼭 드록바의 활약을 보고 싶었다. 공격수인 드록바가 활약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골 아니겠나. 드록바 골 넣는 게 그렇게 보고 싶었더랬다.

그랬는데 드록바가 넣었다. (?) 아... 절대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 저 아름다운 움직임을 어쩔? 어떻게 골을 저렇게 넣니, 디디에 드록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님아? 너 왜 그래? 어떻게 그렇게 테어났을까? 넌 왜 이렇게 완벽한 고얌 =▽=............!!!!!! 어떻게 이렇게 귀여운데 어쩜 저렇게 이쁘게 움직이고 어쩜 저런 말도 안되게 독창적인 골을 넣을 수 있는 거니? 이쁜아 진짜 ㅜㅜ 닌 느무 기여엉~~~ㅜㅜㅜㅜㅜㅜ





왜 이게 이렇게 감격스러운가에 대해 말하자면 이 골은 드록바가 갈라타사라이에 들어간 후 챔스리그에서 4경기만에 넣은 첫번째 골이다. 그동안 갈라타사라이 경기라곤 챔스리그 밖에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내가 얼마나 목말라 있었는지 말해 뭐하겠나.

그거만이 아니라 드록바는 사실 이 경기에서 골을 하나 더 넣었는데 망할 놈의 오프사이드였다. 그래도 나는 좋았다. 드록바는 골 넣었는줄 알고 상탈 할 듯 말 듯 팔랑팔랑 애태우며 세레머니 할라 했는데 멋쩍은 상황이 되어버렸지만 그마저 너무 귀여워서다. 걍 너무 귀여움.

처음 보는 순간 한 눈에 반해 지금껏 7년 째 마르고 닿도록 사랑을 퍼주고 있는 이뿌니 드록바. 이름도 디디에 드록바가 뭐야, 이쁘게? 머리부터 발끝까지 안 이쁜 데가 없고, 하는 짓거리들도 사랑스럽기 그지 없는 귀염둥이. 이제 드록바 경기를 거의 볼 수 없게 될 것만 같아서 갑자기 너무 너무 슬퍼진다. 내 사랑 디디. 오디 가지 마르고 잔디 위에 꼭 붙어 있어야대~!! 폴짝폴짝 뛰는 건 괜찮으니까 해도 돼.


[고민] 만화와 그림의 차이 ①

(입사 초반 마우스 노가다로 그린 자동차)




진짜 웃긴 걸 말해줄까? 위의 그림은 내가 지금의 직장에 들어간 지 얼마 안됐을 때 상사가 시켜서 그린 그림이다. 그런데 이 그림을 뭘로 그린 거 같애? 마우스로 그렸다. 이거 걍 마우스 노가다 해서 그린 그림인 거다. 내가 왜 이 끔찍한 과거를 회상하며 이 그림을 올렸는가 하면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느낀 사람들의 불가사의한 생각들이 나에게 끼치는 피해 때문이다.



나는 4년제 대학의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그런데 대학을 다니던 도중 원피스를 보게 되고 만화가 그동안 내가 찾아 헤매던 바로 그 매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취직을 안하고 출판 만화를 그리는 화실에 문하생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알고 있거나 듣게 된 모든 사람들 (가족, 친구, 회사 사람, 그냥 아는 사람, 처음 보는 사람 등) 은 내 이런 경력에 대해 이상한 반응을 보인다. 물론 나도 이런 식의 과정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가 말하는 이상한 반응이란 그 모든 사람들이 나를 응원한다는 것이다.

그게 왜 이상한가 하면 이렇다. 다들 이런 나의 행동에 대해, '너 답다.' '너는 잘 할 수 있다.' '멋있다.' 등의 반응을 보인다. 문제는 그 이후다. 그러고 나서 나를 끊임 없이 괴롭히기 시작한다. 괴롭히는 방법이야 수백 수천 가지이지만 우선 오늘 새삼스레 더 심각하게 느껴 이 글을 쓰게 까지 만든 괴롭힘부터 말하자면, '그럼 너 그림 잘 그리겠네. 여기 그려줘.' '너 그림 알바 할래?' '너 이거 그릴 수 있지?' 등등.

그럼 나는 대답한다. '나 그림 그리는 거 싫어해.' 그러면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게 말이 돼?' 그래서 나는 또 할 수 없이 설명을 해준다. 내가 만화를 하게 된 이유는 내가 말하고 싶은 것들을 만화로 표현하기 위해서지, 그림이 좋아서 만화를 하게 된 게 아니라고. 내가 말을 정돈해서 할 줄 모르고, 설명이 미흡하기 때문일까? 내가 이 말을 하면 사람들은 나를 이율배반적이다. 이중적이다. 너의 생각을 너 스스로 잘못 알고 있다. 등등 으로 나를 비판한다.

그러면 나는 더이상 설명하기가 싫어진다. 그 사람들을 이해시킬 수 없다는 사실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깨달은 일이다. 내가 다른 사람과의 대화에는 전혀 참여하지 않으면서, 구플에 혼잣말을 지껄이며 즐거워 하는 것 또한 그 때문이다. 그 어떤 사람도 나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고, 나는 그것들에 대해 일일이 설명하는 것이 귀찮다.

나는 말로 설명하는 것에 서툴고, 누군가 꼬치꼬치 캐묻는 것에 내 생각을 논리정연하게 정리해서 대답할 줄도 모른다. 게다가 굳이 내 생각을 그 사람에게 이해시켜야 할 필요성도 별로 느끼지 못한다. 그 사람이 나를 이율배반적이니 뭐니 해도 나는 그저 그 사람이 나에게 말을 거는 게 귀찮을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냥 나한테 말 안 걸면 안되나? 하는 생각이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나에게 그림 일을 시킨다는 거다. 앞서 말한 마우스 노가다 역시 그 중 하나이다. 입사 전 면접에서 3년간 만화를 했다는 경력을 보고 그럼 간단한 그림 정도는 그릴 수 있겠네. 하는 것에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마우스로 자동차를 그리게 시킨 것이다.


(마우스로 그린 자동차가 한 대만 있을까? 여기 올린 거 말고도 많다.)



아무리 그림에 문외한이라도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자동차만 그렸을까? 캐릭터 일러스트 등 별의별 걸 다 시켰다. 물론 따로 돈을 준 것도 아니었다. 그러면서 너가 좋아하는 일 하니까 좋지? 이런다. 그 말에 나는 그저 분노가 차오를 뿐이다. 나는 분명히 말했다. 그림 그리는 거 싫어한다고. 나는 만화를 좋아하지만 이 마우스 노가다는 만화가 아니다.

정말 웃기지 않은가? 만화랑 그림은 다른 것이라고 말하는 내 말은 틀리고, 만화를 그려봤으면 마우스로도 뚝딱뚝딱 순식간에 그림을 찍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맞다는 거야? 도대체 누가 이상하다고 하는 건지 모르겠다. 직장에서만 이런 일이 있을까? 더 심각한 것은 가까운 사람이다.



한 친구는 말 버릇처럼 나한테 불쌍하다고 말한다. 나는 3년간 만화를 하면서 거의 대부분을 한달에 30만원 전후의 수입으로 먹고 살았다. 이것이 크게 문제가 되어 나를 힘들게 한 적은 없었다. 그렇지만 수입이 적으니 일이 터지면 돈이 모자를 때가 있기는 했다.

딱 한 번 무슨 일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십만원이 부족한 적이 있었다. 부모님께 손 벌리기 싫어서 그 때 바로 이 친구에게 십만원을 빌렸다. 참고로 나는 지금 당장 갚을 수 있는 게 아닌 이상 절대 친구에게 돈을 빌리지 않는다. 10년을 함께한 친구지만 그동안 그게 유일한 거였다.

그런데 오히려 그랬기 때문일까? 그 친구는 그때부터 나를 불쌍하게 여긴다. 그리고 최근 나에게 그림 알바를 주면서 생색을 내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것이 아니라 그 친구가 주변에 그림 그릴 사람이 없다고 도와달라고 해서 친구니까 걍 해주기로 한 거였다. 게다가 그 얘기를 할 때에는 완성해야 한다는 날짜가 앞으로도 한참이나 남아 있어 충분히 시간적 여유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수락한 것이었다. 물론 까놓고 보니 아니었다. 그래서 지금도 개고생을 하고 있다.

솔직히 내가 직장 다니면서 유일한 휴식 시간인 주말을 일 하면서 낭비하고 싶을 것 같나? 나는 내 휴식을 몇십만원에 바꾸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나에게 휴식은 돈보다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그런데 과연 내가 이 일을 하고 싶어서 했을까? 그런데 왜 그 친구는 나에게 그림 일을 주는 것이 내가 하고 싶은 꿈의 일을 자신이 이루게 해준 것처럼 구는 걸까?

그림은 내 꿈이 아니다. 내가 싫어하는 귀찮은 작업이라고. 나는 그 친구에게도 만화와 그림이 다르다는 것을 수없이 얘기 했지만 그 친구는 여전히 나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두 사례의 공통점? 둘 다 나를 응원하고 있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나를 응원한다고 하고 있고, 그 사람들이 나를 생각해주는 마음에 대해서 나는 당연히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 어째서 그 응원은 나에게 전혀 쓰잘데기 없이 괴롭힘으로 느껴지고, 오히려 그 이면에 있는 그 사람들의 자기만족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일까?

나를 응원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도와주고 있다는 데서 오는 혼자만의 뿌듯함이 그 사람들에게서 느껴진다. 그리고 나는 그 사람들이 느끼고 싶어하는 자기만족의 희생양이 되고 있는 기분이다.

나는 그 누구에게도 도와달라고 한 적이 없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 나에게 다가와 그림 일을 주어 너의 꿈을 이루게 해주겠다고 한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내 꿈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내 생각을 이해할 줄도 모른다. 나는 내 꿈에 대해 확실한 목표와 계획이 있고,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인생을 살면서 그것에 대해 방황하거나 고민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제발 내 꿈에 대해 그만 아는 척했으면 좋겠다. 그 배려가 내 눈엔 멍청해 보이니까.




- 다음 이야기 -

'너 작품은 언제 나와?' '요즘도 만화해?'
만화는 내 인생에 존재하는 유일한 꿈이 아니다. 작은 일부일 뿐이다.

'내가 하지 말라는 말은 안하잖아.' '회사 그만 두면 안되지.' '그림은 돈이 안돼'
마음에 없는 말을 할 거면 걍 대놓고 반대를 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