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 꿈을 위한 물리학



나는 질량보존의 법칙이 근사적이긴해도 우리가 눈치챌 수 있는 세상 모든 것에 적용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로, 상과 벌. 주변의 평판과 스스로 가지는 만족도. 삶과 죽음도 모두 질량보존의 법칙과 같은 이치가 적용되어 어떠한 형태로든 얻은 만큼 잃고, 잃은 만큼 얻는다. 아, 물론 인과응보, 권선징악처럼 유치하고 촌스럽지만.

아무튼 돈 대신 노동이 따르고, 권력만큼 책임이 따르고, 안락함 대신 귀찮음이 따르고, 아는 만큼 편협하다. 아무리 많은 것을 얻어도 그만큼 잃은 것이 많아 영원히 만족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그렇다고 해도 이것은 매우 적당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이 소멸되지 않고 존재를 유지할 수 있는 것.

그런데 이러한 질량보존의 법칙은 일종의 제약이다. 질량보존의 법칙에 의하면 제약만큼의 자유가 있어야 한다. 그 자유는 상상이라는 형태를 띄고 있는 것일까? 현실의 제약을 상상으로 보상 받는다니.. 이건 좀 억울한 일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종종 상상은 무언가를 창작하거나 발명하게 만들고, 그 결과물은 또 다시 현실에 영향을 미친다. 게다가 상상은 현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러니까 항상 상상이 현실과 분리되어 있는 것 같지만은 않다. 


정말 문제는 세상의 원리가 정말 질량 보존의 법칙과 같은 맥락이라면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그것이 나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사실 나는 이 법칙을 깨트리고 싶어서 안달이 나기도 했었다. 내가 원하는 세상의 법칙은 질량이 그대로 보존 되어서는 안된다. 반드시 질량이 증가해야만 내가 생각하는 이상향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

내 이상향을 잠깐 설명하자면 일단 내 눈에 보이는 세상의 모습이 어떤지 부터 얘기해야 한다. 한정된 세상에 각자 자기만의 공간을 가진 개인들이 빼곡하게 들어차서 매우 답답한 상태이기 때문에 서로 남의 공간을 빼앗아 자신의 공간을 넓힐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 거다. 게다가 내 생각엔 그 중에서도 아주 지배적인 공간을 가진 사람들이 있고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공간에 완전히 침식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실 나는 그 사람들의 공간에 매우 관심이 없기 때문에 그냥 내 스스로 내가 가진 힘만큼 세상 그 자체를 조금 더 늘려서 거기다 내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그런 개척이 세상을 키워나간다는 거고 발전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겠나 싶고. 모든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자신의 공간을 만들어간다면 세상은 정말 어마어마하게 커지게 될 지도 모른다. 그렇게 언제든 무한히 늘려갈 수 있는 것이라면 사람들은 갑갑해하지 않을 거고 그럼 굳이 남의 공간을 침해할 일도 없을 거다.

그런데 만약 질량보존의 법칙이 여기에 적용된다면 내 꿈은 완전 말살이다. 세상의 질량이 증가할 수 없고 영원히 한정적이라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히 아인슈타인은 천재였고, 그 할아버지가 나에게 희망을 주었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에 의하면 질량은 증가하는 것이 가능하다. 에너지의 일부가 질량으로 변환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여기에서 꿈을 이룰 수 있는 희망과 동시에 무엇으로 어떻게 나의 꿈을 이룰 것인가에 대한 적절한 방안까지 찾게 되었다.

아인슈타인은 한정적인줄 알았던 세상 그 자체를 늘려 자신의 공간을 개척해낸 사람이었고 그것이 세상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꿈을 이루기 위한 롤모델 같은 위인이다. 내 꿈에 대한 이런 설명이 조금 허황되고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보이긴 하는데,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나의 이런 꿈은 내가 현실에서 받는 따가운 눈총과 구박때문이었다.


사실 나는 되게 솔직하다. 스트레이트, 직선. 이런 게 나에게 매우 잘 어울리는 단어다. 생각하는 동시에 생각한 것 그대로 말을 하고, 무언가를 볼 때 주변의 잡다한(나에게만 잡다한 거라고 한다) 것들을 무시한 채 본질적인 것을 찾는다. 이런 것 때문에 나는 굉장히 많은 비난을 들어와야 했다. 왜냐하면 나는 조금 멍청한 구석이 있어서 다른 사람들도 당연히 본질적인 것을 먼저 보고 이해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서스름 없이 앞뒤 잘라 먹고 생각나는 대로 말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말들이 매우 비상식적이며 엄청나게 충격적이고 도덕적이지 못하고 이중적이고 위선적이고 다른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심지어 무섭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근데 나는 내가 더 충격이다. 헐이다. 진짜. 나는 굉장히 당연한 것들을 말했다고 생각하는데 내 말의 뜻이 남들에게 내 생각만큼 온전히 전달이 되지 않았던 거다. 그런데 그런 것들도 있지만 진짜로 다른 사람과 내가 정말 너무나도 다른 관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도 많았다. 그리고 항상 비난 받는 쪽은 나였다.

그런데 내가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아직 생각의 정립이 되지 않은 상황에 있었을 수는 있어도 절대 나쁜 생각 같은 것들은 하지 않았다. 굳이 한 단어를 찾아 말하자면 나는 그저 오픈 마인드일 뿐이다. 모든 것에는 이유와 사정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무언가를 대다수의 사람들이 지닌 공용 잣대로 선을 그어 생각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난 잘못되지 않았는데 남들이 자꾸 놀라고 이상하게 생각하면 굉장히 곤란해지기 시작한다. 나는 말을 아끼기 시작했다. 원래부터 말을 잘 못하기 때문에 나는 어차피 내 생각을 온전히 남들에게 전할 수가 없다. 그러면 그 남들은 내가 말한 한두마디를 가지고 겉핥기식으로 판단해버리고 나를 가르치려고 든다. 이거 참 짜증나는 일이다. 이럴 바에야 말을 안하는 게 낫다.

그런데 사람이 어떻게 말을 안하고 살 수가 있나. 누구에게나 소통은 필요하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결국 나는 말을 대신할 나만의 소통 방식을 찾아야만 했다. 그리고 그것은 어떠한 이야기. 픽션에 의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행히 나에게 아주 고마운 재능이 있어 나는 쉽게 이 방식을 채택할 수 있었다. 그 이후 아무리 다른 사람이 나를 이해 못해줘도 괜찮았다. 일단 내가 한 그것들을 보여주었을 때 이전 같았으면 엄청난 비난을 몰고 왔을 내용이라고 해도 그것들이 몰입도 높고 공감 되고 이해가 된다고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는 나의 세계. 현실에 핍박 받고 있는 내 생각들을 펼쳐낼 수 있는 창작물. 그리고 그 이단아 같은 창작물에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공감하는 것. 그걸 이루는 게 꿈이고 이것이 내 나름의 세상을 늘려 내 공간을 개척하는 방식인 거다. 내 공간이지만 세상에 속해있는 것. 나는 여기에 대한 갈망이 이렇게나 크다.

그치만 뭐 이렇게 길게 썼는데 이것도 구체적이지 못하고 현실적이지 못하다고 하겠지. 그 놈의 현실 소리 지겹다응. 난 충분히 현실적이어서 문제 없이 실생활을 잘 유지해 나가고 있고 생활력도 강한데 왜 나한테 자꾸 뭐라 그러지? 내가 보기엔 그 쪽이 더 톱니바퀴 도는 것처럼 보이는데. 툭 하면 힘들다고 그러고. 내 눈에는 그게 더 이상해 보이는데 도대체 왜 내가 이상하다는 걸까? 흑흑..


그릉데.....ㅡ_ㅡ 나는 왜 끊임 없이 이런 걸 생각하고 있는 거지... 원래 나는 누구인가 같은 문제는 청소년기에 하는 거라고 하는데 어른이 되어서도 딱히 정답이 뭔 지는 모르겠어서 그런가. 그저 신념에 의존할 뿐이다. 나는 아직 덜 큰 건가? 다른 사람들은 내 나이에 되게 어른스럽던데 나는 안 그래서, 내가 잘 자라지 않는 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좀 든다. 내가 성숙하지 못해서 이런 생각들을 하는 걸까? 몸집이 쪼끄만 거도 그거 때문은 아니겠지효? ;ㅂ;

아무튼간에 나는 이런.. 뭐랄까? 왜 사냐 같은 문제들이 내 인생의 가장 큰 고민이다. 물론 이런 요따구 고민이 해결되든 안되는 내 갈 길 가는 데에 흔들림이 없을만큼의 확신에 찬 신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신념이 맞는지 아닌지는 영원히 고민해야 한다. 왜냐면 사람은 엄청 멍청하기 때문이다. 내가 틀린 길을 가고 있다고 해도 그게 틀린 길이라는 걸 알고는 있었으면 좋겠다.

음.. 그러고보니 내가 이런 일기를 쓸 때마다 카테고리를 뭐라고 쓰지 하고는 걍 심리라고 적어 넣었는데, 그 카테고리의 가장 적절한 단어를 찾은 거 같다. 지금까지 쓴 것도 다 고민이라고 바꿔야겠다. 우헤헤, 즐거워라.

5 Comments

  • 익명
    2013년 4월 13일 PM 4:54 | Permalink

    그리신 작품은 어디서 볼 수 있나요.

  • 2013년 4월 16일 PM 9:04 | Permalink

    헐.. 여기 왠 댓글이 달려있어서 깜짝 놀랐네요. 아.. 근데 정말 여기 자랑스럽게 보여줄 작품이 있었다면 아마 저는 일을 때려치고 그걸 했을 지도 몰라요. ㅎㅎ

  • 익명
    2013년 5월 5일 PM 9:27 | Permalink

    에너지가 물질로, 생각이 현실로 바뀌는 것은 선형적으로 혹은 미분가능한 경로를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특이점의 발생으로 어느 순간 확~ 피어나는 것일테지요?

  • 2013년 5월 7일 PM 7:10 | Permalink

    음.. 글쎄요. 제가 물리 공부를 열심히 했던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여기서 말했던 특수상대성이론에서 보면 물체에 가해진 에너지가 속도를 빠르게 하는 데에도 사용되지만 그 일부가 질량을 증가시키는 데에도 사용된다고 해요. 속도가 빛의 속도에 다가가면 질량이 엄청나게 커지는 거죠. 그렇다는 거는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가했다는 얘기인데. 그 에너지가 특이점 발생으로 확 피어난 것인지 선형적 경로를 따라 서서히 가해진 것인지는... 음.. 경우에 따라 다르려나요?

    사실 저는 예를들어 이전에 2002 월드컵 경기 있었잖아요. 그 때 우리나라가 그런 엄청난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순간적으로 사람들의 에너지가 한 군데에 집중적으로 어마어마하게 가해졌기 때문에 꿈이 현실이 되었던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이런 경우에는 계기가 필요하죠. 많은 사람들의 에너지가 한 곳으로 모이게 되는 시점. 동기. 그런 계기는 특이점이라고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하지만 또 그 과정을 생각하면 어떤 경로를 따라 움직인 것 같기도 하고요. 음.. 어렵네요.. ㅜ

  • 익명
    2013년 5월 8일 PM 11:04 | Permalink

    물리학과 철학적인 생각을 연결시킬 논리적인 근거가 없기는 하지만 물리학이야기를 하자면 우주에 탄생에 관한 의견중 이런 의견도 있더라구요.
    에너지 준위가 원래는 낮았는데 그게 상수로 존재하지 않고 조금씩 움직이는데 아주 가끔은 갑자기 에너지의 벽을 넘는 경우가 있다고 그렇게 벽을 넘어 물질이 되어 우주가 탄생했다는...
    뭐 믿거나 말거나한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조용히 혼자 만의 생각을 즐기는 저같은 사람들에게는 꽤 재미난 가설이긴 하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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